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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6일 예배(최종원 목사) 설교 말씀 요약 박경옥 202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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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7:5~13

끝이 있어야 새로움이 있다

 

지금은 새로운 전환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역사가들은 중요한 가치의 전환을 가져다주는 사건으로 시대가 구분된다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로 인한 감염병은 과거의 인식체계와 삶의 방식 신앙사고의 전환을 요구하며 혼돈의 시대를 살게하는 시대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에스겔의 말씀도 가치가 전도되고 있고 새로운 세상이 다가오고 있음을 참혹한 전쟁의 상황을 통해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중요한 키워드는 '끝'이라는 용어입니다.

 

에스겔 7장은 간결하고 은유적이며 빅뱅과도 같은 힘이 함축된 詩의 강력한 외침으로 청중을 집중하게 합니다.

 

2절 말씀의 '끝'이라는 히브리어 קֵץ 스트롱번호7093 [ qêts ] 는  

창세기 6:13절의 "모든 육체의 끝 날이 이르렀다"는 말씀과 아모스 예언자가 8:2에서 사용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다"는 말씀의  배경과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끝장이다. 동서남북 어디서나 끝장이다"라는 말씀은 예언자적 종말론과 관련있는데 이것은 이미 아모스에게서 북왕국에게 선포되었습니다. 

 

아모스는 8:2,3에서 추수의 끝인 그날을 예언하는데 전통적인 신앙(대적을 멸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완전히 뒤집고 역전된 세상의 모습인 절망의 시대를 선포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 세상의 침입을 구원이 아닌 멸망으로 선포했는데 에스겔도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3절에서도 이제는 끝이 이르렀다고 하고 5절에서는 이 끝은 재앙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어로는 이 재앙을 רַע 스트롱번호7451'악'으로 설명하며 지금까지의 악과는 다른 '비상한 재앙'으로 거듭 강조하며 24절에서 구체적으로 '악한 이방인'이라고 설명해줍니다. 6절에서는 다시 '끝'으로 7절에서는 '정한 재앙'으로 23절에서는 '쇠사슬'로 설명함으로써 쇠사슬에 끌려가는 요란한 날의 상황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판단하시는 하나님께서는 판단의 원인을 8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재앙의 원인은 '가증한 일'을 행했기 때문이라고 하시며 그 내용을 20절과 10절에서 상세하게 설명해줍니다.

유다의 교만이 '교만이가장 극에 달한 왕'의 힘에 의해 무너질 것을 예언합니다.

 

이것이 에스겔의 역사신앙의 관점입니다. 야훼신앙을 가졌던 이스라엘은 가질 수 없었던 사고였습니다. 그러나 포로됨을 통해 그 전통적 신앙관이 완전히 깨어졌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통해 애굽의 포로됨을 기억하게 되었고 광야의 힘든 삶을 소환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시며 그 창조의 하나님은 세상의 어떤 폭력도 용납하지 않으시며 오직 공의와 정의로  다스리는 분이심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완전히 무너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끝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끝을 보아야 새로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12절 말씀은 2가지, 즉 희년과 포로기의 배경을 고려하여 볼 수 있는데 희년의 때까지 현재의 질서가 유지되지 못할 것과 포로로 끌러간 자들은 자신들의 소유권을 반환받을 수도 주장할 수도 없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의미들은 결국 '일상의 삶'이 임박한 재난과 심판에 의해 그 의미들을 모두 잃게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일상이 사라진 시대에도 모든 삶의 1순위는 경제입니다. 어떻게 하면 조금의 손해라도 보지 않을지에 집중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의 상황은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제자들을 위해 하신 말씀 마가복음 8:34,35과 마태복음 19:2의 말씀들은 이러한 과격한 말씀을 통해 새로운 질서,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세워보자고 던져주셨던 초대의 메시지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건은 우리 삶을 뒤엎어버리는 변혁의 사건입니다. 그 초대에는 영생의 비밀이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가 바라보는 질서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질서를 새롭게 세워버립니다. 전부를 가진 자에게는 더 이상의 것이 필요없습니다. 바울사도도 이 새로운 질서를 보았기에 고린도후서 6장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구약의 말씀은 우리에게 수많은 전쟁터를 보여주면서 그 삶에 속해 있음이 기쁜지 묻고 있습니다. 에스겔서는 그 중심에 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의 관심은 이스라엘의 변화에 있습니다. 그 변화는 끝을 통해 만나게 될 것입니다. 15절에서 이스라엘은 끝인 전염병과 기근으로 진퇴양난에 몰랐습니다. 비로소 끝이 보이니까 19절에서 은이나 금이 중요한 가치가  아님을 알게되었다고 합니다. 화려한 장식은 하나님편에서 오물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문명화된 생활과 인간의 겉치레가 얼마나 신속하게 벗겨질 수 있는지를.

 

결국 모든것이 무너졌을 때, 가장 낮고 낮은 자리에 떨어졌을 때에야 27절의 고백만 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여호와인 줄 알게됩니다.

인생의 끝은 죽음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끝은 죽음이지만 그 끝은 종말은 아닙니다. 마태복음 28:7에서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사도바울도 고후6:9에서 죽은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살아 있다고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말씀들이 거대한 삶과 신앙의 지혜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낮은 자리로 떨어질 때 그 자리를 통하여 새로운 시작의 씨앗을 품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33:10에서 이스라엘은 에스겔에게 죽음과 해체에 대한 대답을 요구하면서 질문을 던집니다. "어찌 능히 살겠습니까?"

포로된 지금 이 고뇌어린 질문으로 겨우 숨을 쉬며 살아갑니다. 더이상 이스라엘을 지탱해 왔던 전통적 신앙은 사라집니다. 오직 우리의 밑바닥을 딛고 치오를 비전으로 이끄실 여호와 하나님만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끝은 재앙이 아니고 다시 여호와 하나님에게서부터 시작할 수 밖에 없는 새로움입니다.

 

무한한 시간 가운데 한 점을 지나는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역사를 통제할 수 없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결국 어떠한 도덕도 윤리도 정의도 공의도 모두 하나님의 존재 앞에 몸을 낮추어야 합니다. 만일 그것으로  하나님을 증명하려 한다면 오히려 이기적이며 권위적이며 타인에게 위협적이며 스스로 의롭다 일컬음을 얻으려 할 뿐입니다. 다만 우리 언덕 공동체는 겸손히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하나님 나라에 소속된 일원으로서 새롭게 열매를 맺게 하는 거룩한 씨앗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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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박창훈 2020.9.9 14:39

    자세한 요약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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