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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3일 예배 (박창훈 목사)설교말씀 요약 박경옥 2020-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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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6:16~24

"조금 있으면...... 그날에는"

 

오늘 본문 앞 절인 12~15절에서는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님께서 오시면 예수님을 통해 들은 것과 장래 일을 말하여 줄 것이라는 내용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통해 말하여질 장래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요한복음의 맥락으로 본다면 예수님과 관련된 일에 대한 장래 일, 즉 조만간 있을 십자가의 의미를 알게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의미는 성령을 통해야만 알게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십자가 이해하면 십자가야말로 완전한 반전이며 진정한 승리이며 세상 구원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을 14절과 대응시켜보면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니까 결국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며, 더 나아가 15절에서는 숨 넘어가는 그 고통의 순간에 예수님은 결코 혼자가 아닌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숨을 고르고 계셨음을, 즉 삼위일체의 신비를 알게된다고 하십 니다. 

 

그리고 이제 오늘 본문 16절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단어로 시작되는데 '조금 있으면'이라는 단어입니다. 19절까지 6번 나옵니다. 그리고 20절 이후로 '그 때가, 그날에는'과 연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간과 관련된 이야기 구조 속에서 '조금 있으면'이 무엇과 무엇 사이인 줄 안다면 본문과 더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제자들이 예수님 옆에서 지켜보는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으로 십자가와 부활 사이의 시간 간격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19절에서 조금 있으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예수님을 볼 수 없게되고 조금 있으면 부활하신 주님을 보게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조금 있으면'의 조금은 역사적으로 실제적인 시간이며 우리가 아는 3일에 해당하는 시간으로 21절의 가장 힘들고 아프고 극적이며 운명적인 생명을 낳는 해산의 시간입니다. 그 해산의 고통의 시간을 지닌면 모든 고통을 말끔히 잊고 생명을 얻어 한없이 기뻐하게 됩니다. 제자들도 주님의 부활을 통해 3일 동안의 근심과 고통을 잊고 진정한 기쁨을 얻게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두번째로는 '조금 있으면'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간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하실 때까지의 사이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 현재로부터 주님의 재림으로 끝이나는 종말의 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추측이나 파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요한복음 자체와 기록된 것과 기록된 것을 읽도록 한 의도를 생각해본다면 단순히 첫번째 의미인 십자가와 부활까지의 3일만을 언급하는 것으로 해석될 순 없습니다. 그 이상의, 즉 종말론적인 기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미 구약(사26:17~19)에서 묵시적으로 언급된 산고를 겪고 잉태한 여인은 메시아를 대망하는 말씀이고 그 메시아를 통해 궁극적인 구원이 이루어질 것을 예언한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서도 23절은 그 종말론적인 상황을 기록한 것 같습니다. 그날에는 아무것도 묻지않는다는 말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뜻을 묻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이 완전히 일치하는 때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아들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때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부활사건은 오히려 두려움만 일으켰습니다. 마가복음은 제자들이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하더라(16:8)로 끝납니다. 그러므로 '조금 있으면'은 십자가와 부활만을 의미한다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변하는 때를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진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모든 생명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의 왕이심을 받아들이는 그 순간을 그때로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묵시문학뿐 아니라 신약성경은 실제로 이 급박한 종말에 대한 기대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잊으면 안됩니다. 아무 기대도 없는 현대인의 눈으로 성경을 읽으면 안됩니다. 적어도 성경을 기록한 제자들은 곧 오실 예수님, 그분의 약속이 분명한 진리였음을 증명할 주님에 대한 고대로 기록하였습니다. 그들이 바라보았던 눈으로 보아야합니다. 이 세상은 주님께서 다시 오셔야 한다는 대명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큰 그림은 몰라도 주님이 오신다는, 주님 앞에 설 것이라는 하늘 나라에 대한 확신과 소망이 있으면 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세번째로 '조금 있으면'은 그날에 오실 주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부여된 시간입니다. 본문 마지막 24절에서 그날에 주님과 함께 기쁨을 얻을 수 있으려면 적어도 지금의 시간을 기도의 시간으로 지내야 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시간은, 하나님의 간섭을 기다리는 시간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마음은 기도하는 시간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7:7~8 말씀도 이제는 진공상태가 아니라 요한복음의 배경에서 읽어야 합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에 대한 약속은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세상에 두고 가시면서 너무 가슴 아파서 마지막으로 강력하고 분명한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시련의 시간은 기도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밖에는 없으며 기도할 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지금은 거짓과 폭력과 과시의 때가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영혼의 깊은 곳으로부터 잘못을 회개하고 이 근심과 고통과 산고의 때를 자기 변화와 기도의 시간으로 만들어서 결국 하사님 앞에 서게 될 시간을 준비하는 우리 언덕이 되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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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박창훈 2020.8.24 15:34

    우리에게 기도의 시간을 주신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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