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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9일 예배 (김태완 목사)설교말씀 요약 박경옥 20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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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9장 28~40절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마지막으로 입성하실 때 일어났던 일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마지막으로'라는 것은 이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면 붙잡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앞두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입성을 위해 다른 때와 달리 특별히 준비하셨고 본문 28절에서는 '앞서서 가신다'는 표현을 쓰십니다. 이 '앞서서, ἔμπροσθεν , ahead'라는 말은 단순히 위치적으로 앞선다는 것이 아닙니다. 의도성을 가지고 메시아의 길을 가려는 자신의 역할의 본을 보이고자 적극적으로 먼저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앞서서 가시는 길을 통해 예수님은 제자들과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시려는 분명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29절의 벳바게와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3km쯤 떨어진 곳으로 이곳을 지나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려면 동문, 즉 이스라엘이 메시아가 오실 것으로 기대하던 금문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또 30절에서 두 제자에게 나귀새끼를 준비하게 하심으로 스가랴 선지자가 9장9절에서 예언한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할 왕이 겸손하게 새끼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다는 예언의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나귀에 대해 부연설명을 하는데 '겸손'하여 나귀를 타시는데 그것도 작은 것,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고 예언합니다. 왕의 위엄과 권위를 드러내는 세상 왕의 입성과는 달랐습니다. 스가랴의 나귀에 대한 해석인 '겸손, ‘ā-nî, Lowly'은 그저 성품 중 하나가 아니라 존재의 내용 전체이며 삶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겸손'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심에서 확실하게 드러났습니다. 특히 초라한 말 구유에 누이신 아기로 이 세상에 오심에서 여실히 나타났습니다. 

 

  또 오늘 나귀를 어디서 준비하셨는지에서도 나타납니다. 두 지명 중 벳바게(Βηθφαγὴ)는 בַּיִת : 집과 פַּג:덜 익은 무화과의 합성어로 가난한 사람들이 먹던 열매가 많은 동네이며 베다니(Βηθανίαν)도 (아람어: בית עניא; Beth anya) "가난한 자, 번뇌하는 자의 집"으로, 즉 가난한 사람들이 준비한 나귀임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평화의 도시에 참 평화를 가져다 주실 '겸손의 왕'으로 입성하십니다. 이 행동을 통해 예수님은 자신이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 왕임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제자들과 백성들은 여전히 로마보다 더 큰 힘으로 예루살렘에 평화를 가져다 줄 개선장군과 같은 메시아를 기대하며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예수가 타실 나귀와 지나가는 길에 깔아드립니다. 또 37, 38절에서는 시편 118편 26절의 찬양에 왕이라는 말까지 덧붙여 찬양을 부르며 자기들이 원하는 메시아가 되어 구원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이들의 모습을 정작 탐탁지 않게 여기는 자들은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백성들이 예수를 따르며 부르는 찬양을 신성모독으로 여겼고 로마에게 폭동으로 비쳐지게 될 것이라 항의하며 잠잠하게 하라고 얘기합니다. 

 

지금까지 공생애 기간동안 예수님은 공개적으로 메시아로 추앙받기를 꺼려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예루살렘 입성에서는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 메시아로 찬송하는 것을 다 받으셨습니다. 이제 곧 그 일을 완성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예루살렘이 예수님께서 이루실 하나님의 화평을 알지 못함을 인해 우셨지만(41절) 자신을 낮추고 비우고 섬기는 사랑으로 이루실 평화를 보여주시려 '앞서서' 가셨습니다. 

 

서문을 통해 칼과 창 등으로 누리던 로마의 평화, Pax Romana를 과시하며 입성하던 빌라도와는 달리 나귀를 타고 '겸손의 왕'으로 입성하신 예수님은 누가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 주는 왕인지 앞서서 가셔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으로 끝나게 하지 않으시고 살리셨습니다. 그렇게 무엇이 참으로 세상을 구하는지 알게 된 제자들은 더이상 돌들처럼 잠잠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김 받는 것을 기뻐하며 날마다 '예수는 주의 이름으로 오신 왕'이심을 가르치기와 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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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박창훈 2020.8.10 11:57

    새로운 은혜를 체험하도록 수고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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