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2일 예배 (김태완 목사)설교말씀 요약 | 박경옥 | 2020-07-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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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9:1~27 ''우리가 가진 한 므나''
오늘 본문의 므나 비유는 마태복음25장의 달란트 비유와 의미나 전개가 비슷합니다. 이 비유는 지난 시간 삭개오의 이야기에서 계속되는 잃어버린 자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마태복음의 '달란트 비유'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치던 자들에게 그들이 기대하던 메시야의 나라와는 달리 하나님 나라는 어떠한 나라인지 설명하시는 세 가지 '천국비유'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오늘 누가의 '므나비유'는 예루살렘 입성 전에 하신 말씀이지만 11절을 보면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들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 ''하나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에게 바로 앞 장 18장에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삼 일만에 살아날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는데도 그 이르신 바를 모른다고 하시며 메시야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시고자 이 비유를 하신다고 하십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마태, 마가복음에서 많은 무리가 하던 '다윗의 자손'의 고백을 한 맹인의 입을 통하여 받으십니다(18:38,39). 또'오늘, 지금 구원하소서'라는 '호산나' 역시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의 집(19:9)에 이르렀다고 하심으로 죄인과 잃어버린 자에 의해 다윗의 후손으로서의 왕이신 메시야 예수(호산나)가 불리워지고 드러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을 통해 이마 시작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그때를 기다리는 자들이 어떻게 기다려야하는지를 말씀해주십니다.
그러니 이 비유를 단순히 천국에서 주실 상급을 기대하며 자신에게 주신 은사를 잘 사용하자는 초라한 의미로 만들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상급의 개념이 그저 우열과 비교의 개념이며 천국까지 가서도 부요와 권력을 더 차지하게 되는 내용이겠습니까?
본문의 12절에서 한 귀족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기위해 먼 나라로 떠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14절에서 왕위를 받아오는 왕을 미워하는 백성이 등장합니다. 그 당시 에돔인인 헤롯과 사마리아인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아들 아겔라오의 분봉왕을 유대인들에 좋아했을리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유대인들이 아겔라오의 왕위를 반대란 것처럼 예수님 왕위도 유대인들에게 거절당할 것을 오버랩시키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외쳤던 다윗의 후손으로서의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고난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자기를 낮추시며 죽기까지 복종하시는(빌2:5~11) 왕으로 오셨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유대인뿐 아니라 이 세상은 그런 방식의 왕에 동의하지 못합니다. 온 세상이 하늘의 왕이신 그분의 왕되심을 조롱하고 멸시합니다. 그런 삶은 약함으로 간주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자리를 승리의 자리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힘은 약함이며 섬김이며 비움이며 낮아짐입니다 이 땅에서 이미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선 다시 오실 때까지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이 본질을 지키며 살길 바라시며 이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이윤을 남겼다는 것에 집착하면 자꾸 우리 자신의 업적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인의 이름으로 장사할 수 있는 권한을 받은 것이며 내 이윤이 아닌 주인의 이윤을 창출하는 대리자임을 잊지않는 것입니다. 다시 오셔서 왕노릇하실 주인이 맡겨주신 은혜와 긍휼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이 충성이며 이윤인 것입니다. 주인이 주인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면 자신의 지혜와 결연한 의지로 스스로 주인노릇, 왕노릇하는 것입니다. 어떻게서든지 손해보지 않는 것이 목표인 사람은 주인의 장사할 수 있게하시는 그 은혜를 믿지 못하고 수건에 싸두게 됩니다. 21절처럼 주인을 자기 식으로 생각합니다. 주인의 사랑과 은혜에는 아무 조건이 없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열 고을, 다섯 고을의 권세도 우리 식으로 해석합니다. 그 권세는 부유해짐과 자기 맘대로 누리는 권세가 아닐 것입니다. 앞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 원리가 비움, 섬김, 낮아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는 모두 충성된 종입니다. 내가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주님이 그렇게 인정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어줍지 않게 우리의 종교 행위나 선행 등으로 주인의 비위를 맞추려는 시도를 하기 전에, 그 주인의 사랑과 긍휼과 은혜 앞에 자신을 먼저 던지는 것입니다. 매 순간 우리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고백하면서 내 안에 이미 살아 역사하고 계신 우리의 주인에게 도우심을 구하면서 다시 오실 하늘의 왕을 내 곁에 두고 사는 충성된 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많이 섬기고 많이 낮아지고 많이 부인당하며 주님의 맺으실 열매를 열심히 장사하는 언덕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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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박창훈 2020.7.14 09:05
귀한 말씀 정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