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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묵상 35<고난주간1> / 암울한 미래 김태완 20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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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암울한 미래

 

찬송가 143왠말인가 날 위하여

 

기도

 

말씀 묵상 / '전도서 41~4, 9~12

 

개역 개정 :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새번역 : 나는 또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억압을 보았다. 억눌리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려도, 그들을 위로하는 사람이 없다. 억누르는 사람들은 폭력을 휘두르는데, 억눌리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나는, 아직 살아 숨쉬는 사람보다는, 이미 숨이 넘어가 죽은 사람이 더 복되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이 둘보다는, 아직 태어나지 않아서 세상에서 저질러지는 온갖 못된 일을 못 본 사람이 더 낫다고 하였다. 온갖 노력과 성취는 바로 사람끼리 갖는 경쟁심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나는 깨달았다. 그러나 이 수고도 헛되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혼자보다는 둘이 더 낫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할 때에,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넘어지면, 다른 한 사람이 자기의 동무를 일으켜 줄 수 있다. 그러나 혼자 가다가 넘어지면, 딱하게도, 일으켜 줄 사람이 없다. 또 둘이 누우면 따뜻하지만, 혼자라면 어찌 따뜻하겠는가?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공동번역 개정 : 하늘 아래서 억울한 일 당하는 사람들을 다시 살펴보았더니, 그 억울한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데 위로해 주는 사람도 없더구나. 억압하는 자들이 권력을 휘두르는데 감싸주는 사람도 없더구나. 그래서 나는 아직 목숨이 붙어 살아 있는 사람보다 숨이 넘어가 이미 죽은 사람들이 복되다고 하고 싶어졌다. 그보다도 아예 나지 않아서 하늘 아래 벌어지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것이 더 좋다고 생각되었다. 사람이면 누구나 경쟁심이 있어서 남보다 더 얻으려고 기를 쓰는 것을 나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이 또한 바람을 잡듯 헛된 일이다…  혼자서 애를 쓰는 것보다 둘이서 함께 하는 것이 낫다. 그들의 수고가 좋은 보상을 받겠기 때문이다. 넘어지면 일으켜줄 사람이 있어 좋다. 외톨이는 넘어져도 일으켜줄 사람이 없어 보기에도 딱하다. 그뿐이랴! 혼자서는 몸을 녹일 길이 없지만 둘이 같이 자면 서로 몸을 녹일 수 있다. 혼자서 막지 못할 원수도 둘이서는 막을 수 있다. 삼겹으로 줄을 꼬면 쉽게 끊어지지 않는 법이다.

 

해설

 

사랑하는 하나님! 우리의 미래이고 희망인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대한민국 교육이 우리 아이들과 학부모, 그리고 선생님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아이들은 지나친 경쟁과 너무 많은 공부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더불어 따뜻한 정을 나누고 밝은 미래만 꿈꾸기에도 모자란 나이에 친구를 이겨야 하는 비정한 경쟁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배우고 있습니다.

 

학부모들은 자식들의 장래에 대한 걱정으로 아이들을 사교육으로 몰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경쟁 교육과 낡은 교육으로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진 멍에는 이 시대가 안고 있는 고난입니다.

 

많은 이들이 아이들의 짐을 덜어 주기 위해 열정을 바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하셨듯이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보살핌과 헌신으로 교육 혁신의 물꼬가 트였습니다. 학교가 미래를 이끄는 민주 시민이 탄생하는 곳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개혁 앞에는 대학입시라는 거대한 벽이 가로 놓여 있습니다. 이제는 그 벽을 넘어서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선생님들과 함께, 학부모와 함께 그 벽을 넘어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 고난 속에 있는 우리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모두가 손잡고 교육을 바꾸는 길을 함께 가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세종시 교육감 | 최교진

 

찬양 봄과 같아서

 

마침 기도

 

위로의 하나님, 우리들의 슬픔과 아픔 가운데 함께하시는 주님의 손길에 감사합니다. 사순절의 마지막 주간, 고난 주간을 시작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화해를 위해 예수님께서 우리의 허물을 위해 대신 고난 당하셨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이웃의 허물을 위해 기도하며 그의 슬픔과 아픔을 위로하며 함께 애통하는 심령을 부워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추천

댓글 3

  • 박창훈 2020.4.7 10:15

    아멘

  • 배상필 2020.4.6 14:26

    아멘~

  • 박경옥 2020.4.6 06:5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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